후기

[후기] 이스탈의 조용한 광담 (2/3~2/11).

by 애스디 posted Feb 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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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눌한입담 님이 진행한 [로그 호라이즌] 시나리오 <이스탈의 조용한 광담> 후기입니다. 

시나리오 구성에 대한 총평 & 피드백 위주가 될 것 같네요.

 

주의) 시나리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향후 이 시나리오에 참가할 생각이 있으시다면 읽는 걸 삼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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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포함! 주의! =========

 

 

1. [로그 호라이즌]에 대해.

 

저는 [로그 호라이즌]은 이번이 첫 플레이였고요. 캐릭터 제작부터 꼼꼼하게 도와주셔서 편하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로그 호라이즌 전투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도 잘 배울 수 있었고요. 로그 호라이즌 세계관 특성상, 'MMORPG 플레이어'로서의 시점이라는 점도 신선했던 것 같네요. 플레이 내용을 예전에 하던 [엘더 테일] 게임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으니... 다만, 플레이 후에도 얘기했지만, PC들이 죽어도 부활하는 [모험자]고 외부인(게임 플레이어)이다 보니 플레이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현실적인 위기로 와닿지 않는 면이 있네요. 막말을 하자면, 대지인=게임 캐릭터라고 생각하면 굳이 무리해서 관여할 동기가 안날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퀘스트를 마치고 아키바로 돌아온 에필로그 장면에서, 결국은 게임 퀘스트였을 뿐이니 보상 받으면 된 거 아닌가- 하는 식의 인식은 너무 플레이어 편의적이란 느낌도 좀 들었어요.

 

 

 

2. 시나리오 진행에 관해서.

 

[로그 호라이즌]의 탈을 쓴 CoC 시나리오였던 것 같습니다. 원래 [로그 호라이즌]은 PC가 모험자로서 대지인과 세계에 닥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보통일텐데, 이번 플레이에선 PC가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끌려다니면서 어찌할 수 없는 적과 공포를 마주쳤던 점에서 전형적인 CoC식 시나리오였던 것 같아요. CoC 시나리오로서 보자면, 마을이나 인물 설정도 흥미로웠고 BGM이나 소품을 많이 준비한 점이 좋았고요. 여러모로 준비를 많이 하셨단 느낌이 듭니다.

 

다만 CoC식 공포물이 갖는 문제점도 부각됐는데... PC가 택한 행동으로 뭔가 사건이 풀려가기보다, 강제진행이나 NPC의 개입으로 진행된 점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PC들이 피로 페널티를 감수하고 야간에 경비를 서는 선택을 했는데도, 살인이나 자살 사건을 막지 못하고 뒤늦게 발견한 것도 있고요. 첫 전투에서도 어떻게든 동료들을 탈출시켜서 살았나 했는데 그다음에 기수가 마을로 달려가 살인을 저지르는 걸 막지도 못했고, 두번째 전투에서도 겨우겨우 마굿간지기 아들을 구해냈는데 다시 기수가 밟아죽이려는 걸 막을 방도가 없었으니까요. 시나리오 진행상 필요한 장면이었을 순 있는데, PC가 취한 행동과 노력이 매번 허사가 되니까 무력감이 커지더라고요. 야마키시 일족 같은 핵심 설정도 NPC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왔고 PC가 조사로 알아낼 수 있던 점은 아니었던 거 같고요. '마법진'을 이용해 기사를 막는 것도 PC가 그걸 알아내서 직접 활용하면 좀더 성취감이 있었을 거 같은데, NPC 크리스티나가 써버리니까 PC도 못 막는 기사를 NPC가 처리하는 '데우스 액스 마키나'로 보였습니다. 결말에서도 원흉인 전재를 PC가 쓰러뜨렸다면 좀 속시원했을 것 같은데, 전재는 하고 싶은 거 다하고 휙 떠나버리니 완전히 무력하게 농락당하고 만 느낌이었습니다. CoC라면 이런 찝찝하고 절망적인 엔딩도 괜찮았을지 모르겠는데, [로그 호라이즌]으로선 애매... 후속 시나리오에서 이걸 해결한다면 몰라도요.

 

전재가 모든 사건의 원흉이라는 설정("너희 모험가들이 '자극'을 원했기에 이 무대를 만들었다!")은 인상적인 반전이었어요. 다만 그 결과 PC가 시나리오 도중에 하는 수사와 추리(대지주의 비밀 결혼과 유언장 등)가 허사가 된다는 점은 아쉽네요. 말하자면 [쓰르라미 울 적에는] 문제편 같은 느낌? 플레이어보고 추리를 하라는 것 같지만, 사실 추리를 해도 아무 쓸모가 없고 진짜 진상은 그 너머에 있다는... 프롤로그 씬 자체가 낚시라서 처음부터 플레이어가 철저히 속는 쪽을 의도하신 거라면 모르겠지만요. 여튼... 일루엔님이 말씀하신 대로, 전재는 철저히 무대속 배역을 연기하다가 PC가 진실에 도달하면 그때 짜잔- 하고 반전을 드러내고 시원하게 맞대결로 끝냈으면 좋았을 듯 (차라리 이 전투 난이도를 매우 높게 설정해서, PC가 패배하면 전재가 유유히 빠져나가는 걸로 해도 좋을 듯 합니다).

 

 

 

3. 그외 개선점/피드백 의견.

 

플레이어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사건 진상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안배하면 좋을 듯 합니다. 아래는 몇 가지 제안...

 

- PC들의 조사대상인 NPC를 4장로와 주요인물로 줄여두고, 나머지는 철저히 엑스트라로 처리하면 좋을 듯 합니다. 혹은 조사할만한 인물이 좀더 대놓고 수상한 낌새를 많이 보이게 한다든가요. 의사가 첫날밤 늦게 들어왔다...는 건 의심스럽긴 한데, 그 자체만으로 뭔가 캐물어서 밝혀낼 길이 안보이더라고요. 의사가 첫날밤에 동쪽 숲 쪽에서 밤늦게 돌아오더라... 라면 PC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겠죠.

 

- PC들의 행동 페이즈를 뚜렷이 설명하고 야간행동에 대한 페널티도 명시적으로 정하면 좋을 듯 합니다. 낮에는 오전/오후 두 번 행동할 타이밍이 있고 이때 공동행동을 하거나 개별조사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예를 들어 동쪽 숲에 가는 이벤트는 전체 행동으로 못박아도 되겠죠). 특히 NPC 만나고 하는 건 개별조사로 하면, 개인 씬이 되니 장면은 늘어지겠지만 대신 각 PC의 분량은 좀더 골고루 확보되지 않을까 합니다.

 

- 전투에서 승리조건을 달성했을 때 그에 따른 보상이 분명히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무덤에서 첫 전투에서 승리하면, PC가 무사히 탈출하는 걸로 끝난다든가. 혹은 그 장면에서 뭔가 야마기시 일족 마법진의 잔재 같은 걸 발견했어도 어땠을까 싶고요 (그런 걸 [프롭]으로 둘 수도 있겠죠). 마굿간지기 가족들을 구출하는 장면에서도 PC들이 아이를 구했으면 그 자체로 끝나고, 그 가족들에게서 뭔가 의미있는 단서를 듣는 쪽이 나았을 것 같고요. 

 

 

 

p.s.: 아쉬운 소리가 많아 죄송합니다. 근데 저도 예전에 GURPS로 헌터물 돌릴 시절에, 이런 식으로 NPC 뒷설정을 숨겨두고 PC가 헤매는 식으로 진행한 적이 많아서...ㅠㅠ (OR로 한 시나리오를 17세션인가 했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했나 싶은데, 당시엔 제가 마스터링을 잘하고 있는 줄 착각했지요(...)). 그러다가 요즘은 공포물을 해도 좀 대놓고 단서를 흘리며 어떻게든 진상에 도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바뀐 듯 하네요.

 

  한편 [로그 호라이즌] 시스템이랑 시나리오 자체가 좀 안 맞는 면도 있어서... [로그 호라]로 돌린다면 시나리오를 좀더 액션 지향으로 바꾸는 것도 좋을 듯 싶고요. 다음에 기회되면 저번에 돌렸을 땐 어땠는지 얘기도 자세히 듣고 싶네요 ㅎㅎ;

 

  아무튼 이렇게 [로그 호라이즌] 맛보게 해주셔서 감사하고요. 다음에 기회되면 또 같이 플레이해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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