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PG는 현실적이어야 하는가?

by 솜다리 posted Jun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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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셀 프루스트가 우리들에게 그려서 보여준 파리는, 프루스트의 책 안에 밖에 없다. 그것은 프루스트가 만든 것이다. 톨스토이가 이야기하는 페테르부르크는 톨스토이의 소설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톨스토이가 만들어낸 것이다. 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물랭 루즈」는, 그의 그림 속 이외에는 영원히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이름의 건물이 있고, 툴루즈 로트렉이 거기에서 착상을 얻었다는 건, 결국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자주 말해지는 것이, 그건 흔히 말하는 "초자연적인 진실"에 관한 이야기겠지, 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이건 전혀 진실과는 관계가 없다. 미술이나 문예는 전부 가공의 세계를 무대로 해서 일어나는 것, 즉 괴테가 이름 붙인 "아름다운 가상"인 것이니까, 진실인지 허위인지, 그런 문제는 아무래도 좋다. 꿈에 본 캥거루가 진실이냐,라는 문제와 같은 정도로,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 엔데의 메모 상자 '세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자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비단 문학만이 아닌 각종 미디어 등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이야기 중 하나가, '실제론 그렇지는 않다'라는 반박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현실 고증'이라는 것이겠지요. 최근엔 만화같은 것들을 보아도 '아, 이 만화는 고증이 잘 되어있네'라던가, 사극 같은 것을 보면 '여긴 고증이 잘못 되어있네요'라던가 하는 이야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화살은 RPG를 비껴가지 않고, 중세 배경의 이야기라던가 아니면 현실을 배경으로 한 밀리터리물 등에서도 이러한 '고증'을 요구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연출에 있어서 당위성이 맞지 않는 경우의 반박이라던가도 비슷하게 볼 수 있지요. 물론 그러한 것이 전혀 필요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세 시대에 소총을 든 현대전 병사가 나타나면 물론 이상할 것이고, 사극 같은 경우라면 영상에 나타나는 그 모습을 실제의 당시의 모습이라고 생각해버릴 가능성 또한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지나치게 이러한 일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TRPG에서 마스터가 연출하는 건 '실제로 있는 세계'가 아닌 마스터가 만들어낸 '그럴듯한 가상의 세계'입니다. 그것이 설사 실제 현실에 있던 장소나 특정 사건을 연출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스터는 세계를 만들어내고 표현하는 사람이지만,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있을 수 있는 모든 인과 결과를 알고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극히 평범한 사람이지요. 게다가 서로가 알고 있는 지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역사에 정통한 사람이 있기도 하고, 신화나 공상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총기의 제원까지 둘둘둘둘 외우고 있는 밀리터리 매니아도 있겠지요. 물론 지식이라는 것이 알고 있어서 나쁠 것은 없지만, 게임을 하는데 있어서 모두가 그 분야의 지식을 달달달달 외워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건, '지나치게 현실성에 집착하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TRPG는 온갖 우연과 공상, 상상이 뒤섞여있는 공간입니다. 서울 하늘에 갑자기 드래곤이 날아갈 수도 있고, 사람들이 그걸 보고 하하 저 녀석 또 나왔네 하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도 전혀 문제가 없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결코 현실이 아닌 공간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대로 일어난다는 보장이 결코 없는 공간인 것입니다. 지나치게 현실성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TRPG의 자유로운 행동과 상상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마스터는 '그럴 듯한 세계'를 만들어내고, 플레이어는 그 세계를 '현실에 재는 것'이 아닌 '체험'하는 것이 역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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