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PG 토론 - 사망이라는 단어의 무게

by 크로우™ posted Nov 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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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화하다 나온 주제 중 하나인데, 민사마가 건설적인 이야기는 헌홀넷에서 할 것을 요청하셔서 글로 써둡니다.

그 대화에서 나왔던 예시들도, 이 게시글을 보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 당시에 대화 중이 아니었을테니 다시 싣죠.

 

구체적인 논점을 이야기하자면,

 

"①룰북의 사망이라는 용어 (혹은 상황 묘사), ②사망에 의한 룰상 처리, ③RP상의 캐릭터의 사망은 각각 동일한 개념인가?"

 

군요.

우선 대화의 편의를 위해 ①②의 경우부터 이야기하자면, 아마 No겠죠. 이야기가 나온 계기가 사이코로 픽션 시리즈의 헌터즈 문이 계기였던 것을 감안하고 이야기하자면, 바로 그 사이코로 픽션에서도 두 개념이 차이가 나는 룰이나 상황이 있습니다.

 

마기카로기아의 경우 마법사 PC는 허구한 날 '사망'합니다(①의 의미로). 하지만 그 처리는 결코 헌터즈 문과 같지 않죠. 그냥 쿨시크하게 살아나서 다시 자기 할 일 하는 게 마기카로기아의 '사망'입니다. 마법사가 무지 세서 가능한 거 아니냐고요? 그건 ③의 영역입니다. ①②의 관계를 다룰 때 언급할 부분이 아니고, 이 둘을 분리해둔 다음에 각각 따질 부분이에요.

 

반대로, 시트 소거, 즉 ②의 의미의 사망이 ①에서는 다른 용어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채널에서 나왔던 비기닝 아이돌의 은퇴가 그 경우인데, 그걸 사망이라고 표현하지 않죠. 물론 ③의 의미의 사망으로 오해받으면 곤란하기 때문이지만요.

 

이 부분은 아마 이 정도로 이견이 없을 것 같으니, ①③과 ②③에 대해서 차례로 제 의견을 말해보겠습니다.

 

 

a-1. 룰 용어 '사망'은 실제 캐릭터의 사망인가?

a-2. 룰북상에 묘사된 '사망'은 실제 캐릭터의 사망인가?

 

분명 서로 다른 질문이지만 이 두 질문에 대한 제 해석의 방식이 동일하므로 묶어둡니다. 또한, ③, 즉 캐릭터의 사망은 현실에서의 생물체의 사망과 동일한 걸로 생각합니다. (세계관 자체가 얼마든지 부활 가능한 게임 캐릭터인 로그 호라이즌이나, 캐릭터가 기계지만 마음이 있는 경우 등은 일단 제외해둡니다. 어차피 대답은 같지만 논의에 혼란을 주니까요)

 

여기에 대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 대답은 둘 다 No입니다.

 

비유입니다만, 수학, 특히 기하학에서 점, 선, 면이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고등학교까지 학생들이 배우는 건 분명 있을 겁니다. 점을 예로 들자면 길이가 없고 넓이도 없는 것, 내지는 두 선이 만나서 만들어지는 것. 여러 가지로 표현되겠죠.

 

하지만 전 일단은 수학과 출신이고, 이과의 공통분모인 미적분학 외에 조금 깊은 부분도 배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배우는 기하학에서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서도 말이죠. 과목명이 뭐더라?) 저런 식으로 말하는 학생은

 

[BW2] 치라치노 강의 by뷰플.png

교수님의 C기관총! 효과가 굉장했다! (영상 출처)

 

을 맞습니다.

 

그런 용어를 정의하려고 하면 순환논리에 빠져서 결국에는 아무런 정의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저런 기본적인 요소 몇 개를 무정의 용어, 즉 아무 뜻도 없는 용어 자체인 용어로 둡니다. 순환논리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점 / 선 / 면을 D₀ / D₁ / D₂로 놔도 수학의 논리 전개에는 아무런 차질이 생기지 않아요. 심지어 면과 점을 맞바꿔서 불러도 학문 자체는 전혀 손상을 입지 않습니다. 다만 학생들이 고통스러울 뿐이죠.

 

그럼 왜 그걸 굳이 점 / 선 / 면으로 부를까요? 그야 국어사전에서 가장 비슷한 단어를 쓰는 게 직관적인 이해를 더 편하게 해주니까죠. 그 이상의 의의는 없고, 그걸로 충분합니다.

 

저는 룰에서 묘사하는 사망이라는 단어도 딱 그 정도로 생각합니다. 뭔가 행동하거나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고, 세션이 끝나면 먼 곳으로 가버린다. 이런 논리라면, 이걸 '사망'이라고 표현하는 게 제일 알기 쉽지 않겠어요? 물론 원작의 세계관대로라면 그건 정말로 사망이 맞지만, 팀 내에서 그걸 캐릭터 사망으로 처리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빈사의 부상으로 (아마도 ②처리에 의해) 모든 힘을 잃고 병상에 장기입원한 상태가 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 단순히 정신적 충격으로 은퇴 (비기닝이 아닌 헌터즈 문의 의미로) 한 것뿐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헌터즈 문이 허구한 날 사망을 외치고 도주의 대가 룰에서는 아예 특기 전부 없어졌다고 헌터를 사망시키는 괴랄한 룰이긴 한데, 그 도주의 대가에서 나머지 3개의 시트 삭제(어빌리티 없음, 기준치 마이너스, 은퇴결의 2회)는 전부 은퇴로 기술합니다. 그리고 그런 은퇴는 사망과 룰상 처리에 전혀 차이가 없죠. 그렇다면, 이 사망이라는 '용어'를 세션 또는 캠페인에서 어떻게 해석할지는 팀 전체, 최종적으로는 GM이 결정할 일이 아닐까요?

 

룰북상의 묘사에 대해서도, 이러이러해서 사망합니다…… 라는 건 결국 저런 식의 용어와 마찬가지로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화에 지나지 않겠죠. 이 부분에 대해서도 비유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렇게 안 하면 제 생각을 설명하기가 어려우니까요.

 

대화재 (일반 마법)

상대를 불살라서 상대 라이프에 800 포인트 데미지를 준다.

 

노인의 맹독약 (속공 마법)

①: 이하의 효과에서 1개를 선택하고 발동할 수 있다.

● 자신은 몸에 좋지만 입에는 쓴 약을 복용해서 1200 LP를 회복한다.

● 상대에게 이상한 약을 먹여서 800 데미지를 준다.

 

기수 형식이 다른 건 대화재가 재록이 안 됐기 때문이니 패스. 밑줄 친 부분이 제 임의로 묘사를 추가해본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두 데미지 방식…… 800 효과데미지라는 결과에는 어떠한 차이도 없어요. 불을 지르든 약을 먹이든, 아니면 액체질소로 얼린다 해도 결국 유희왕 룰상으로 구현되는 건 800 효과데미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이란 말이죠.

 

만약에 노인의 맹독약의 일러스트와 카드명이 달랐다면 어땠을까요? 예를 들어, 이런 카드명에 이런 묘사라면 어떨까요?

 

콜키스의 왕녀 (속공 마법)

이 카드의 카드명은 룰 상 "노인의 맹독약"으로 취급한다.

①: 이하의 효과에서 1개를 선택하고 발동할 수 있다.

● 자신은 페인 브레이커로 1200 LP를 회복한다.

● 상대에게 룰 브레이커로 800 데미지를 준다.

 

메데릴리 불쌍해요 메데릴리…… 흠흠. 아무튼.

 

이렇게 되면 룰적으로 어떤 차이가 생기나요? 전혀 차이 없습니다. 다만 일러스트와 카드명이 다르니 취향에 따라서 덱에 이쪽을 사용하는 사람은 있겠죠. 블랙 매지션을 판도라판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룰북의 룰 파트 (세계관 파트가 아닌) 에서 룰이 아닌 묘사를 하고 있다면 그건 고작 저 정도의 간섭력밖에 없다고 봐요. 세계관에는 간섭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룰에 대해서는 하등 영향력을 갖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 이해를 도와줄 뿐입니다.

 

당장 노인의 맹독약만 봐도, 800 데미지가 독약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쉬울 뿐이지, 복잡하게 돌아가면,

 

● 상대에게 펄 잼을 먹여서 몸을 건강하게 해주지만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줬다는 정신적 충격을 통해 800 데미지를 준다.

 

라는 것도 가능합니다. 결국 이미지는 이미지, 상상은 상상. 중요한 참고자료지만, 팀이 원하면 그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거죠. a-1, a-2 양쪽 모두 절대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건 사망 이외의 단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당장 부위 데미지라는 말만 해도, 룰적으로는 동일한 부위 데미지지만 헌터와 몬스터에 대해서는 다르게 처리하는 게 좋다는 지침이 블러드문 특집 기사에서 제시되었고 말이죠.

 

비슷한 예를 딱 하나만 들자면, 이건 제 자체적인 어레인지지만, 전 「의사흡혈귀(수도뱀파이어)」를 단순히 좀 더 강한 담피르로 설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팔로워 종별로서의 담피르는 혈계 어빌리티를 0레벨용밖에 사용하지 못하는데, 담피르 헌터가 고레벨이 되면 그 제한이 좀 완화되는데 팔로워 담피르는 시스템상의 문제로 그걸 풀 방법이 없거든요.

 

 

b. 사망의 '룰상 처리', 즉 시트 소실은 실제 캐릭터의 사망 (또는 그에 준하는 재기불능) 인가?

 

여기에 대해서도 사망 이외의 단어도 마찬가지지만, 사실 시트 소실 이외에 그렇게까지 신경쓰이는 룰상 처리라고 할 게 없죠. 그러므로, 일단 여기에 대해서는 세계관상 정말로 어쩔 수가 없는 마기카로기아를 제외하고 말해보죠.

 

우선 비기닝 아이돌의 '은퇴'. 레벨을 못 올리면 아이돌을 은퇴한답니다. 이야, 이 무슨 미오 붐 같은 상황입니까. 그런데 그 혼다 미오 결국 돌아와서 끝까지 잘 버텼잖아요. 제가 데레마스는 아직 나무위키로밖에 안 보긴 했습니다만.

 

돌아올 때 시트를 초기치로 할지 평균치로 할지는 팀 정책 나름이겠지만, 어느 쪽이든 GM이 묘사할 방법은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 너무 쉬었더니 실력이 떨어졌다, 혹은 정신적 충격으로 제 실력을 내지 못한다 등이 있겠고, 후자의 경우도 여러 가지 있겠지만 옛 동료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재기하기 위해서 (또는 단지 부러워서) 혼자서 연습하고 있었다 등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럼, 이 은퇴 = 재기불능 설이 나오게 된 계기인 헌터즈 문으로 돌아가볼까요.

 

처음에 ①②를 분리해버린 계기가 사실 이거기도 해요. 용어 '사망'이 단지 장기간 입원을 의미하는 거라면 이 논의는 은퇴에 대한 윗쪽의 이야기와 전혀 다를 게 없어지니까 간단히 No라는 답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좀 더 극단적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확실히 사망한 경우, 즉 ①=②인 경우를 예로 들어보죠. 그러면, 헌터즈 문의 세계관에서 '사망'한 헌터가 되돌아오는 것은 과연 불가능합니까?

 

거의 그렇지만, 그게 절대는 아니에요. 분명 헌터들의 힘으로라면 되살릴 기술력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헌터즈 문 시리즈까지는 정통 사이픽 세계관에 속하고, 닌자와 마법사가 등장하는 룰입니다. 그리고 닌자와 마법사라면 동사체(워킹 데드)나 의사흡혈귀(수도뱀파이어)를 만드는 게 아니라 정말로 되살리는 것쯤 얼마든지 가능해요. 전자의 경우 오니의 혈통의 두령 한정 비전인법 【반혼】과 의식인법 【사자부활의 법】이 있고, 제가 잘 모르는 고류인법이랑 요마인법 같은 데이터도 합치면 좀 더 있을지도 모르죠. 후자의 경우 「운명개입」의 사후 사용이라는 방법이 존재합니다.

 

마기카로기아의 소멸의 경우는 세계관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정말로 답이 없긴 한데, 이건 다른 용어니까요.

 

 

뭐어, 그런 고로, 저는 ①, ②, ③은 상황에 따라서 분리할 수 있는 별개의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는 합치시키는 게 서로 편하지만, GM이나 팀의 의향에 따라서는 충분히 분리해도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c. 여담

 

이걸 깨닫게 해준 모 캠페인에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헌터 홀에 들어올 때쯤은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이 꽤 잘 되어있기도 했고요. 하지만 결국 헌터 홀 시즌 1~2 쪽은 전원 유동인 유동 팀이다 보니 고정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캐릭터의 사망의 (스토리적인) 타격이 적었고, 그래서 다들 ①=②=③이 되는 것에 어느 정도 무덤덤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고정 팀에서 이걸 고집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죠. 헌터즈 문 3부작(?)만 봐도, 무력화라는 구제장치가 없는 헌터즈 문에서는 몬스터가 전력을 다해 공격할 수조차 없게 되고, 블러드 크루세이드나 블러드문에서 역시 막타를 먹이지 못하게 됨으로써 성물 헌터에 의한 【소생】이 상당히 위협적이 되는데다 「고무」 룰의 사망시 사용법을 헌터들이 사용할 기회 역시 없어집니다. 게다가 멸토파계종의 【귀명귀의】는 위험성이 너무 큰 어빌리티가 되고요.

 

뭐, 모든 사망을 '실제로는 죽지 않았다'로 처리하는 것도 저는 탐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플레이어들이 광기자살을 너무 간단하게 볼 게 뻔하니까요.

 

제 기억에 의하면 시수리님이 블러드 크루세이드 캠페인을 돌리셨을 때 후반부에 헌터가 한 번 전멸했는데, 그걸 단순히 경험치 제로로 처리하고 다음 세션으로 넘어가셨던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룰을 엄격하게 따지면 이건 룰과는 어긋난 처리에요. 무력화 또는 유혹 상태의 헌터는 뱀파이어의 승리로 세션이 끝나면 시트가 소실됩니다. 그 뒤에 시체가 되든 팔로워가 되든 그건 GM이 멋대로 정해도 PL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만, 소실만큼은 룰상 결정사항이죠. 하지만, 서로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그 부분조차도 넘어설 수 있는 게 하우스 룰, 나아가서는 TRPG와 ORPG의 자유도가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블러드문 기본 룰북의 단락 하나를 인용하고 마치겠습니다.

 

게임 마스터의 역할

게임 마스터는, 몬스터의 입장에 서서, 그 행동을 결정하고, 기본적으로는 룰에 따라서 플레이어에게 판정의 유무를 알려주거나, 행동의 성패를 결정합니다. 나머지는 플레이어와 같습니다.

하지만, 테이블 토크 RPG에서는 다양한 일이 일어납니다. 가공의 세계에서 가능한 모든 것이 룰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플레이어가 룰에 없는 행동을 하고 싶어할 경우, 게임 마스터는, 게임이 즐거워지도록 자유롭게 룰을 변경, 조정해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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