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3 17:00

보이스 RPG는 ORPG인가?

조회 수 39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안녕하세요. Hunter Hall에서 『호러 액션 RPG 블러드문』의 마스터를 하고 있는 크로우입니다.

일부러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써서 시선을 끌어 보았는데요.

 

우선은 이런 글을 쓰는 게 TRPG와 ORPG, 보이스 RPG 중에서 우열을 가리려고 하거나, 더 나아가 "이쪽이 진정한 ……이다! 이것만 해!" 라는 주장을 펼치기 위함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오히려 그러한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저는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예전에 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마스터 한 명과 플레이어 한 명을 알고 있고, 최근에도 이러한 부분 때문에 구인에 어려움을 겪고 계신 마스터가 계신 것 같아서입니다. 전부터 생각해 왔던 부분이지만, Hunter Hall이 새 출발을 하는 최근 들어 이 부분에 대해 생각나게 하는 일이 유난히 많네요.

 

본디 TRPG는 넓은 의미로는 이 세 가지를 전부 포함합니다만, 이 글 내에서 TRPG는 오프라인으로 직접 만나서 플레이하는 것만을 지칭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글 내에서 ORPG는 채팅을 통한 것만으로 한정합니다.

 

 

 

TRPG와 ORPG,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곳에서 시작된 취미인데요, 그래서 둘 다 잘 즐기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어느 분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같은 취미를 서로 다르게 즐기는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시간이나 공간적 제약 때문이 아닌, 이 차이 때문에 어느 한 쪽만을 즐기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말하자면, 스타크래프트:리마스터를 하는 사람에게 최신 버전이라면서 스타크래프트 2를 가져다 준다면 좋아할 수도 있지만, 이게 어떻게 스타크래프트냐면서 화를 낼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 글에서는 비슷한 이 두 취미의 차이점에 주목해 볼까 합니다.

 

먼저 TRPG에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사실 TRPG 경험이 극히 부족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겠습니다만, TRPG의 장점은 '상대를 직접 만난다'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모니터 너머의 생각을 알 수 없는 사람보다는, 표정을 짓고 목소리를 들려 주는 상대에게 더욱 마음을 터놓는 사람도 분명히 있죠.

 

그렇기 때문에 TRPG는 '서로의 감정을 알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심기가 불편해지면, TRPG에서는 그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배려를 받고 플레이를 정상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의 감정에 같이 공감할 수 있고, 재미있는 드립이라도 나오면 다함께 웃어 줄 수 있습니다.

 

ORPG에서는 반대로 '상대를 모니터 너머에서 만난다'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낯을 가리거나 대인 관계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라도 모니터 너머에서 보내 오는 글자의 나열들은 그렇게까지 마음을 뒤흔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연기를 잘 해내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한결 덜합니다. 이 때문에, ORPG는 '과감해지기 쉽다'는 장점을 갖습니다. 그것이 연기에 있어서든, 아니면 플레이에 참여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든입니다. 예를 들면, ORPG에서는 GM이 아닌 플레이어라도 본인과 성별이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에 거리낄 것이 별로 없습니다(재현도의 문제가 생길 수는 있겠지만요).

 

ORPG가 가지는 또 한 가지의 장점은 '로깅(logging)'입니다. 어떤 멋진 세션을 했고 경험을 공유하고 싶을 때, 또는 단순히 세션의 기록을 저장하고 싶을 때, 대부분의 ORPG 툴에서는 그것을 매우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만날 수 없게 된 사람들과의 예전 기록을 보며 좋았던 한때를 추억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죠. 말하자면 '리플레이의 보존성과 공유성'입니다.

 

그러면 TRPG는 리플레이를 남기는 것이 불가능한가, 하면 일단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상업 룰의 공식 리플레이 등이 대부분 그렇듯이, 녹음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대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성 데이터는 텍스트 데이터보다 용량이 크고, 일반 유저 레벨에서는 나온 주사위 눈까지 세세히 기록하기엔 무리가 있죠. 그렇다면 이것은 단점인가라고 하면, 저는 과감히 그렇지만도 않다는 의견을 내겠습니다. 말하자면 '한 번뿐인 순간이기에 더욱 소중하다'는 장점으로도 작용하는 겁니다.

 

그 외에도 TRPG와 ORPG는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ORPG는 계산이 복잡한 몇몇 룰에 대해 GM이 미리 준비한 전용 프로그램으로 계산을 간편화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한편, TRPG는 누군가 목이 마를 때 옆에서 음료수를 전해 줄 수 있고, 대부분의 경우 장소를 마련해 놓고 하기 때문에 갑작스레 팀원에게 생긴 사정으로 플레이를 중단해야 하는 경우가 비교적 적습니다. 제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차이점을 이 글에 다 적을 수는 없겠죠.

 

 

 

이쯤에서 처음의 다소 도발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갈까 합니다. 그렇다면 보이스 RPG는 ORPG인가? ORPG라는 말의 넓은 의미이자 원래 의미, 즉 단순히 "온라인으로 하는 모든 TRPG 행위"를 지칭한다면 누구도 그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다루기로 한 좁은 의미, ORPG라는 단어에 사람들이 으레 기대하는 의미를 가지고 말하자면,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보이스 RPG의 특성이 ORPG보다는 TRPG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보이스 RPG에서는 얼굴을 볼 수는 없을망정, 자신의 감정을 목소리로 들려 주는 상대가 있습니다. 상대가 정말로 즐거운지, 혹은 화를 참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얼굴을 보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리플레이의 보존성도 좋은 편이 아닙니다. 대화만으로 진행할 경우에도 주사위를 굴리는 일 등은 툴을 이용하게 되고, 이것이 녹음으로도 리플레이를 완벽하게 저장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녹음하더라도 몇 시간짜리 음성 파일에서 원하는 장면을 찾아가기가 어려운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죠. 또한, 최근에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부끄러우신 분들을 배려하기 위해 음성과 채팅을 병용하는 보이스 RPG 마스터들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렇게 할 경우 두 기록의 싱크 문제로 리플레이의 보존성은 더욱 떨어지게 됩니다. 전술한 대로, 리플레이의 보존성이 떨어지는 것이 반드시 단점은 아니지만요.

 

목소리를 주고받으면 아무래도 사람은 과감해지지 못합니다. 문자 메세지로는 격분해서 싸우다가도 통화를 걸면 크게 화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 경우는 좋은 의미로 과감해지지 않는 경우입니다만, TRPG에 있어서 연기가 과감하지 못하다는 것은 반드시 좋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서로의 캐릭터가 합을 맞춘다는 의미에서는 반드시 나쁘지도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일장일단인 겁니다.

 

이러한 부분들에서 저는 보이스 RPG는 ORPG라기보다는 '온라인으로 하는 TRPG'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ORPG에서 으레 사용하곤 하는 몇몇 프로그램이나 웹 사이트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중요한 부분에서는 ORPG의 장점이 아닌 TRPG의 장점을 가지고 있고, ORPG와 같은 경험을 기대한 사람에게 다소 다른 경험을 안겨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이 실망감을 가져다 줄지, 혹은 "이것이 진정한 ORPG구나"라고 착각할 정도의 즐거움을 가져다 줄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저는 보이스 RPG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이것은 저 개인의 취향 문제이며 보이스 RPG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보이스 RPG를 마스터링하시는 마스터 분들, 또는 아예 ORPG에 관심이 없는 TRPGer 분들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잘 이해하시지 못해서 "보이스 RPG와 ORPG는 결국 같은 것"이라거나 "보이스 RPG가 더욱 발전된 ORPG의 방식"이라고 생각해 버리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ORPG에서 보이스 RPG로 건너가신 분들도 이런 생각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이 둘을 같게 보는 것을 경계합니다.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면 우열을 비교할 수 있게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보이스 RPG와 채팅을 이용하는 ORPG 사이에 상하 관계는 없습니다. 단지 차이점이 있을 뿐이고, 특정 부분 (예를 들면 플레이 시간) 의 장단점을 비교할 수 있을 뿐입니다.

 

Hunter Hall이 디스코드로 이주하면서 보이스 RPGer들도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지금 이러한 점을 보이스 RPGer분들이 잘 이해해 주셔서, 자신들의 방식을 채팅 위주의 ORPGer들에게 강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ORPG에 흥미가 없으셨던 TRPGer 분들이라면 한 번쯤 보이스 RPG를 즐겨 보시는 것도 추천하면서요.

 

では、良い狩りを。

Who's 크로우™

profile

제 마음은 흔들리고, 흔들리고, 또 흔들립니다.

그 때마다 되돌리고, 되돌리고, 또 되돌려 주세요.


또다시 악에 빠져들지 않도록.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 profile
    아르미 2017.10.24 18:17
    뭔가가 더 뛰어나다는 생각은 가져본적이 없지만 이 글을 보고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이스로 하는건 TRPG에서 장소의 제약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구 직접적으로 소통하는거니까 TRPG라고 저도 생각해요~ 잘보고 갑니다!!
  • profile
    title: (GC) N-맨크로우™ 2017.10.24 20:33
    잘 봐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도돈토후 2차 방 정리가 12월 16일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Lenn 2017.12.01 24
공지 운영진 추가 임명 알림 title: [러브라이브] 마키EX노도치 2017.10.17 52
공지 헌터홀 관리자 명단 (2017.10.18) title: np2의사양반 2017.01.05 217
공지 헌터홀을 처음 찾아오신 분들에게 2 title: np2의사양반 2016.03.17 1364
공지 헌터홀 이용 규정 안내 4 title: (GC) R-맨니모나 2015.02.11 1302
756 싸지방의 요정으로 진-화 1 update 인디고 2017.12.16 4
755 홈페이지 살아 있나 테스트 title: (GC) N-맨크로우™ 2017.12.12 5
754 현재 길티 위치즈 번역 진행 상황 (+잡담) title: (GC) N-맨크로우™ 2017.12.06 9
753 사소하지만, 신경쓰여. 4 title: (GC) N-맨크로우™ 2017.11.28 37
752 수료 4 인디고 2017.11.21 23
751 운영진이 바뀐 것의 여파인지 도돈토후 관리가 안되는 것 같네요 3 히나레 2017.11.13 70
750 Othinus → FLare title: [신데마스] 안즈FLare 2017.11.03 16
» 보이스 RPG는 ORPG인가? 2 title: (GC) N-맨크로우™ 2017.10.23 39
748 인세인 시나리오 추천부탁드립니다 ㅎㅎㅎ 1 아챠 2017.10.06 50
747 가입인사 올리고 채팅방 들어가려는데 5 file SpycraP 2017.10.05 51
746 안녕하세요! 더블크로스 3rd를 구입하려고 하는데... 5 시오 2017.10.04 56
745 블문 개조 2.0패치 메모 3 title: (GC) N-맨크로우™ 2017.09.18 38
744 설문조사입니다. 8 title: (GC) N-맨크로우™ 2017.09.17 39
743 번역 목표 6 title: (GC) N-맨크로우™ 2017.09.15 40
742 길티 위치즈 인증 1 닭둘기 2017.09.14 20
741 블러드문 인증 3 file 닭둘기 2017.08.26 60
740 어제 쓴 글 1개 삭제했습니다. 9 title: (GC) N-맨크로우™ 2017.08.24 62
739 주저리주저리 쓰긴 했습니다만 title: (GC) N-맨크로우™ 2017.08.23 15
738 현게타러 갑니다 ㅠ_ㅠ/ 3 title: np2의사양반 2017.08.20 56
737 밤이 깊었으니 푸념. 4 title: (GC) N-맨크로우™ 2017.08.20 3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8 Next
/ 38